법기수원지의 가래나무와 개잎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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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그래서인지 수원지라는 말에는 청량한 기운이 숨어 있다.
경남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있는 법기수원지는 저수지 뒤를 감싸고 있는 낙동정맥에서 동해 쪽으로 흘러내린 계곡물이 모이는 곳이다.
물도 청정하지만, 무엇보다 근 100년이 다 돼 가는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다)가 있어 경외롭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수원을 확보하기 위해 쌓은 저수지라고 해서 저어할 그 무엇도 없다.
지금도 행정구역으로는 양산시의 땅이지만, 법기수원지 만큼은 부산광역시 상수도본부 명장정수장
법기수원지라는 '부산'의 이름을 달고 있다.
생명의 근원, 그속을 들여다본다.
- 숲에 들어갈 때는 맨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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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는 일제강점기인 1927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932년 완공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 뒤로 부산시민의 수원지로 쓰이면서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돼 왔다.
법기수원지에 좋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이 있다는 얘기는 그래도 주변에 널리 알려졌다. 신임 부산시 상수도 공무원들의 방문 등으로 세간에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알음알음
이곳의 절경이 그만 공개되고 말았다. 굳센 울타리로 둘러싸여 범접할 수 없던 공간이 2011년 시민들에게 전격 개방되면서 지금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엄격하게 금하는 것이 있으니 유모차나 어르신들의 지팡이 등 보호장구 이외는 아무 것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숲은 시민에게 개방을 하되, 수원지의 수질을 청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래서 여느 유원지와 다르게 규제가 많다. 하지만 이곳은 명백하게 유원지가 아니라 '수원지'고
시민들의 숲을 보려는 심정을 헤아려 개방할 뿐이다.
2011년 개방되기 이전에는 그저 수원지의 명성만 듣고 와서 인근 식당가에서 보양식을 먹거나 회식을 하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개방 이후에는 부산을 물론 경남과 인근
울산의 방문객까지 몰려들었다. 개방 이후 한동안 주말이면 법기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가 주차장이 돼 버려 기삿거리 없던 사회부 신입 기자들에게 고마운 소재가 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의 생활이 불편해진 것은 뻔한 사실. 하지만 반전이 있었으니 사람들이 몰리면서 장사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주말에만 반짝 하는 것이지만, 마을 진입로 인근
집들은 식당이나 커피 전문점을 표방하고 나섰고, 건물이 없는 마을 주민들은 직접 기른 농산물을 가지고 나와 좌판을 펼친다. 숲이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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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잎갈나무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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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수원지의 잘 조성된 숲의 어디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어떤 방문객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나무는 바로 개잎갈나무다.
수령는 2015년 기준 92세로 공식화 되어 있다. 하지만 댐을 만들 당시 나무를 심었다고 하더라도 씨앗을 심지는 않았을 것이니 근 100세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개잎갈나무는 히말라야 산맥이 원산이란다. 최고로 자라면 수고가 50m까지 자란다. 지름은 무려 3m나 된단다. 히말라야 삼나무,
설송이라고도 하는데 잎갈나무와 달리 잎이 지지 않는 상록수라서 개잎갈나무라고 불렀단다.
오래된 초등학교에는 꼭 이 나무가 몇 그루씩 있었다. 늘푸른나무여서 학교나 관공서 같은 곳에 심어두고 보기에 좋았던 모양이다.
수원지에 들어서면 거대한 개잎갈나무가 주변을 압도한다. 고개를 한껏 젖혀야 나무 꼭대기 쪽을 바라볼 수 있다.
거기에서 몇 년 만에 오랜 동창 친구를 만났다. 이제 구순을 바라보는 부친을 모시고 산책을 나왔다고 했다. 울산에 사는 그는 주말이면 아버지와 함께
주변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닌단다. 몇 년 전 심하게 앓아누웠다가 겨우 회복한 아버지와 산책을 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제는 매주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들이를 한다고 했다. 부러웠다.
친구는 "아버지, 이 나무가 아버지와 거의 갑장이네요. 나무 할아버지 참 멋집니다. 아버지도 건강하세요."하고 어리광을 부렸다. 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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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지 둑의 반송도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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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들이 울어댔다. 여름에 가면 숲은 매미 소리와 숲 그늘을 통과하며 시원해진 바람으로 한기를 느낄 정도다. 가을의 숲은, 또 겨울의 숲은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개잎갈나무 할아버지를 지나 수원지 둑으로 올라가는 덱을 오른다. 방문객들을 배려해 둑길을 한 바퀴 돌아 나올 수 있도록 동선을 만들어 놓았다.
둑으로 올라가는 덱 곳곳엔 쉬어갈 수 있도록 커다란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 곳에 의자도 있다. 의자에 앉아 숲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중년의 부부가 있다.
아내 없이 혼자 온 처지라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반송은 한국 고유 소나무와 같은 종이지만 옆으로 퍼져서 자라는 특성 때문에 특별하게 조경수로 각광을 받는다.
법기 마을 어르신들의 증언에 따라 이 소나무들이 둑이 완공한 뒤 기념수로 심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심을 당시도 제법 번듯한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해서 반송의
나이는 어림잡아 13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모두 7그루가 있어 '칠형제 반송'으로 부르고 있다. 이 반송은 자칫 둑에서 뽑혀나갈 뻔도 했다는 얘기가 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반송의 아름다운 자태가 탐이 났던 한 기관장이 반송 반출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갈 뻔 했던 반송은 그러나 다행하게도 제자리에 있게
되었다. 오직 흙으로만 쌓아올린 둑에 뿌리를 깊게 내린 반송을 파 낼 경우 둑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듣고 그 힘 있는 사람은 입맛만 다셨다는 후문.
어쨌거나 오래 뿌리 내린 곳에서 늠름하게 서 있는 반송. 용틀임하듯 붉은 갑옷을 걸치고 뻗어나간 반송의 자태는 이곳을 찾은 사람에게 경탄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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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취수탑은 등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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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 위에 서면 산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좋다. 물이랑도 찰랑거려 문명에 찌든 마음을 살랑살랑 씻어주는 느낌이다.
넓은 저수지에는 등대처럼 생긴 구조물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이것이 취수탑이다. 비잔틴 건축을 닮은 이 취수탑은 댐이 만들어질 당시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물을 끌어올리는 단순한 인공 구조물이지만 디자인을 가미해 놓았으니 지금도 보기가 좋다. 취수탑 아래쪽에는 취수터널이 있다.
지금도 여기서 물을 명장정수장까지 도수관로를 통해 끌고 가 정수를 한 뒤 각 가정에 수돗물로 공급하고 있다.
취수터널에는 준공 즈음에 새긴 각자가 있다. 법기수원지의 완공은 당시에도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동아일보에도 완공식이 보도가 되었으며,
당시 조선 총독이던 사이토 마코토가 직접 글을 써서 이를 터널 입구에 새겨놓았다.
생군윤정원(生群潤淨源)'이란 다섯 글자다. '깨끗한 물은 많은 생명들을 윤택하게 한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식민지 총독이 시혜를 베풀듯 던져준 글귀가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좋은 것은 처음과 끝이 좋아야 한다.
안내판에는 '일제강점기 때 만든 시설이지만, 결국 강제노역에 동원된 선조들의 힘으로 건설된 것이다'고 해 놓았다. 궁색하지만 그 또한 맞는 말이다.
이집트 피라미드나 중국의 만리장성을 보고, 노예나 전쟁 포로들의 힘으로 건설된 구조물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냥 일제강점기 때 만든 시설물 정도로 이해하고 싶다.
- 살기 좋은 마을 법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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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수원지가 있는 법기리는 자연부락 명칭으로는 본법마을이다.
양시시청 지명 유래에 따르면 조선 철종 11년(1860) 이전에는 본의곡(本義谷)이라 불렀고, 고종 9년(1872)에는 본의리(本義里)로 되었다가 그 후 본법(本法)으로 했다.
지금의 법기리는 고종 34년(1897)부터 본법과 창기마을이 합쳐져서 법기리로 불려 왔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본법(本法)과 창기(昌基)로 다시 분리되었다.
본법마을에 있는 고분군이 5세기 것으로 여겨져 아마 이때부터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원지가 생기기 이전 윗쪽의 지동마을은 이제 수몰이 되었고, 아랫마을도 약 100년전 호식사건(虎食事件)이 있어 지금의 새마을로 옮겨와 살게 되었단다.
1932년 당시 부산부 상수도 식수원 법기수원지가 완공되면서 지금의 마을 형태가 이루어졌다. 법기 마을 초입에는 수령 수백년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산세가 수려하고, 청정지역이지만 주민들은 개발제한구역,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한때 주민들 사이에서는 '법기수원지 물이 더럽다'라는 소문도 돌았단다.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노린 거짓말이었겠지만 어디 수질이 풍문으로 결정될 것이던가.
다수의 이익을 위해 마을 주민들이 불이익을 본다면 그 마을에 사는 주민들을 위한 관계기관의 지원은 남달라야겠다.
최근 보도를 보면 양산시도 법기리에 대한 각종 지원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주민들이야 아쉽겠지만, 남들이 다 부러워하고, 오고 싶어 하는 천혜의 숲이 마을에 있다는
것은 어떤 가치보다 더 큰 기쁨이라고 주민들에게는 욕 먹을 만한 생각을 해 본다. 그래도 법기리에서 살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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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 수원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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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교통 : 부산역~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도시철도를 타고 간다.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 앞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법기수원지로 가는 법서교통 1번 마을버스를 타면 된다. 법서교통 1번 마을버스는 부산 금정구 도시철도
범어사역~법기 수원지를 오가는 노선 마을버스다.
배차 간격은 30분에서 1시간 간격. 범어사 전철역에서 오전 7시 29분 출발하여 법기수원지에서 나오는 막차 오후 8시 10분까지 하루 15차례 운행한다.
아무래도 앉아서 가려면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종점인 노포역까지 가지 말고, 마을버스 출발지인 범어사 전철역에서 내려 갈아타는 편이 낫겠다.
시간을 단축하려면 전철 종점까지 가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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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수원지 방문객 안내 수칙
개방 시간: 하계(4~10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계(11~3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중무휴
해서는 안 되는 일
- 배낭(음식 가방 등)은 가지고 갈 수 없다. 입구 보관함에 두어야 한다.
- 김밥이나 커피 음료수 빵 과자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 애완견은 출입이 안 된다.
- 자전거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입구 보관소에 세워두어야 한다.
- 돗자리도 반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수원지 산책로 주변에 긴의자가 있다.
- 고성방가(소음) 금지다. 누가 노래까지 부를까마는 굳이 써 놓았다.
그리고 깨알 같은 글씨로 '여기는 유원지가 아니라 수원지입니다. 깨끗하고 쾌적한 휴식처가 될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시가 바립니다"고 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