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본 복천동 고분군과 동래읍성
부산문화관광에서 함께하는 이야기가 있는 관광지!
부산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은 언제일까
아마도 6·25 전쟁으로 임시수도가 옮겨왔던 시절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전국에서 피란민들이 몰려온 데다 전쟁 물자를 바탕으로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하면서
국제 무역항으로 발돋움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을 깊이 연구한 역사학자들은 이 같은 견해를 단호히 거부한다. 부산이 문화적으로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시절은 4~5세기 삼국 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그 당시 최첨단 철기문화를 동래지역에서 꽃피운 흔적이 복천동 고분군에서 대거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을 과거로 돌려 부산의 뿌리를 찾아가는 걸음은 복천동 고분군에서 동래읍성으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시간을 돌려 과거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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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동 고분군 가는 길. 도시철도 4호선 7번 출구로 나가면 동래시장이 있다. 시장 입구 오른편에는 동래부헌이 있다.
매년 10월 ‘동래읍성 역사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동래부헌 뒤편에는 송공단이 있다. 임진왜란 때 “중국으로 가는 길을 비켜 달라”던 왜군에 맞서 “싸우다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비켜주기는 어렵다”며 단호히 저항하다 숨진 동래부사 송상현의 넋을 기리는 곳이다. 매년 4월 15일이 되면 동래기영회가 주관하는 제사가 열리는 공간이다.
송공단 뒤편 마안산 쪽으로 10분가량 걸어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조그만 언덕에 조성된 잔디밭 곳곳에 작은 사철나무들이 반듯하게 관리되고 있다. ‘저 푸른 초원 위를 걷는다.’는 기분으로 다가가면 조금만 팻말이 서 있다. 가야시대 고분이 발굴된 곳이라는 안내문과 더불어 무덤이 발굴된 순서별로 번호를 매겨둔 적힌 팻말이다. 그렇게 조성된 복천동 고분군. 남부지방에서 경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유물이 발굴된 유적지다.
복천동 고분군을 발견한 과정도 흥미롭다. 동래구청이 판자촌이 늘어선 복천동 지역을 정비하기 위해 터파기 공사를 하던 도중에 유물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한·일 고대사 논쟁에서 우리 연구진이 압승을 거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유물들이 발견된 순간이다. 그 이후부터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던 일본 역사학자들이 슬며시 꼬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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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동 고분군 중앙에는 유리로 만든 돔이 있다. 복천동 고분 야외전시장이다. 전시장 안에는 53, 54호 고분에서 나온 토기를 비롯한 선사시대
유물들이 발굴됐을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복천동 고분 야외전시장에서 복천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마치 골프장을 걷는 기분이다. 탁 트인 언덕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길은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다.
복천동 고분군에서 복천 박물관으로 넘어가는 길은 구름다리로 조성되어 있다. 구름다리 아래 벽면에는 학 다섯 마리가 노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복천 박물관 입구에는 영보단비가 세워져 있다. 한·일합방으로 국권이 침탈되기 전 해인 1909년, 호적대장을 제출하라는 관헌의 통보에 반발한 지역 주민들이 “조상의 성명이 적힌 서류가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동래부헌 산하 13개 면 주민들의 호적대장을 모아서 불에 태웠다고 한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일제강점기에 접어든 1915년, 동래 지역 주민들이 힘을 모아 호적대장을 불에 태운 현장에 세운 비석이 ‘영보단’이다. 요즘 말로 하면 ‘ 개인 정보 보호’ 차원에서 진행된 저항이 민족의식으로 연결된 상징물이라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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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박물관 전시실에는 가야시대 토기들과 철제 무기, 금동관 등 부산의 고대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국내 최초로 유적이 발굴된 현장에 건립된 고고학
박물관이라는 안내문이 인상적이다. 최근에는 가야와 마한·백제 사이에 이뤄졌던 교류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학예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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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박물관 뒤편에는 동래읍성이 있다. 임진왜란 때 송상현 부사가 주민들과 함께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현장에 복원된 유적이다.
그 입구에는 동래읍성 역사관이 있다. 과거 동래읍성의 모형을 비롯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역사관 앞마당에는 투호와 제기차기를 할 수 있는 민속놀이 체험 장비들이 조성되어 있다.
동래읍성 역사관 뒤쪽 북문 광장에는 동래 출신 과학자를 기리는 ‘장영실 과학동산’이 있다. 해시계와 측우기, 수표 등 장영실이 발명한 천문 기기 19점이 전시된 공간이다. 노비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딛고 연구에 매진한 결과 종3품 벼슬에 오른 과학자 장영실이 발명한 기구들을 복원해둔 곳이다. 이런 과학기구를 발명한 장영실도 훌륭했지만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해 타고난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세종대왕의 혜안이 더욱 돋보인다.
장영실 과학동산에서 왼쪽으로 100m가량 걸어가면 ‘포토 존’이 있다. 송상현 부사가 왜적에 맞서 장렬하게 싸우는 장면을 배경으로 하는 곳이다.
포토 존 앞에는 동래읍성 야외 공연장이 있다. 평소에는 산책 나온 주민들이 가볍게 운동하는 곳이다. 해 질 무렵 찾아간 야외 공연장에는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주민들이 많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민·관·군이 하나가 되어 왜군과 싸우다 처참하게 최후를 마친 역사의 현장에서 여유를 즐기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조상의 음덕’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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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 북문에서 오른쪽 성벽 길을 따라 걸어가면 북장대가 나온다. 마안산 정상에 있는 누각이다.
부산시대 전역이 눈에 들어오는 지점이다. 북장대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본 광안대로와 사직운동장이 정겹다.
북장대에서 동래읍성 광장을 거쳐서 서장대로 향하면 고층 아파트촌이 내려다보인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동래향교’가 나온다.
조선 태조 원년에 설립됐다는 지방 교육기관이다. 요즘 기준으로 ‘지방대학 캠퍼스’에 해당하는 시설이다. 처음에는 읍성 동문 밖 (현재 동래고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여러 차례 장소를 옮기다 순조 때인 1813년에 지금의 자리에 정착했다는 유적이다.
마을 이름이 명륜동인 것도 향교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유학의 성현을 모시는 대성전을 비롯해서 교실 격인 명륜당과 기숙사에 해당하는 동서재 등이 남아 있다. 요즘 서울대학 격인 성균관을 축소해 놓은 구조라고 했다. 당시 동래향교의 정원은 70명이었다고 한다. 동래향교에 입학한 자체가 엘리트 코스로 나아가는 지름길로 접어든 것으로 여겨졌을 만큼 뛰어난 수재들이 모여 있는 공교육의 산실이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그런 동래향교도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근대식 학제가 시행됨에 따라 교육적인 기능이 사라지고 현재는 시설만 남았다.
- 동래읍성을 찾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맛보아야 할 먹거리가 있다. 동래파전이다. 부산 앞바다에서 잡은 대합과 새우, 굴 등 싱싱한 해물에 동래 지역에서 재배한 쪽파와 찹쌀, 멥쌀, 밀 등을 넣고 구운 파전이다. 간장이 아닌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4대째 그 맛과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동래 할매 파전집이 부산 민속 음식 1호점으로 지정되어 있다.
- 상세정보
- 주소안내 : 산 동래구 명륜로 94번길 43-10
- 전화번호 : 051)552-0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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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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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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