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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문화가 어우러진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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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부산역 광장 앞 큰길 건너편에는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붉은색으로 치장한 중국식 건물에다 러시아 문자가 적힌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에는 상하이 문이라고 크게 써 붙인 높이 10m 크기의 대형 문이 서 있다. 부산 차이나타운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부산 동구 초량동 차이나타운 거리

19세기 말까지 청나라 영사관이 있던 곳이다. 그 주위로 중국에서 가져온 비단과 포목, 꽃신, 거울,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가게가 들어서면서 청관 거리로 불렸다. 이후 한중 수교가 체결되고 1993년 부산시와 상하이시가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상하이 문을 중심으로 조성된 차이타운이다.
하지만 이곳이 차이나타운으로 정착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광복 직후 미군들이 본격적으로 밀려오면서 텍사스촌으로 변신했다. 미군들의 해방구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6.25 전쟁 이후에는 미군들을 상대하는 술집과 댄스홀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유흥가로 바뀌었다. 중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만 그들의 위세는 급속하게 축소됐다.
여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화교 탄압정책을 강력히 추진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중국과 국교가 단절된 것도 한 몫을 했다. 그 와중에 이곳 살던 화교들의 국적도 타이완으로 바뀌었다. 중국 산둥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차이나타운은 1991년 한국과 옛 소련이 국교를 맺으면서 또 한 차례 변화를 겪는다. 러시아 선원들과 보따리 장사들이 부산으로 몰려오면서 이곳에도 러시아 문자로 적힌 간판이 나붙기 시작한 것이다. 옛 소련이 해체되면서 우즈베키스탄에 살던 고려인 동포 등이 이곳으로 돌아와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이후 차이나타운에는 동남아 출신 노동자 등이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즐겨 찾는 외국인 거리로 변신했다.
그런 와중에 1993년 부산시와 상하이가 1993년 자매결연을 맺고 매년 1차례 축제를 열면서 차이나타운이라는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중국 화교들이 초량 외국인 거리를 흡수했다는 표현이 훨씬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100여 년간 걸어온 발자취를 미리 알고 찾아간 차이나타운. 러시아 글자로 쓴 간판이
걸려 있는 환전소와 잡화점이 어색하지 않다. 가게 입구에 앉아 있는 금발 머리에 하얀색을 피부를 가진 사람들. 서툰 영어와 러시아어를 섞어 사용하는 사람들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친근감이 감돈다. 사연을 물어보니 옛 소련이 해체된 이후 모국으로 돌아온 우즈베키스탄과 사할린 교포들이라고 한다.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러시아 서원들과 보따리 장사들을 주로 상대한다고 했다.
몇 대를 걸치면서 핏줄이 옅어졌지만 그래도 한국인의 피가 섞인 사람들이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러시아 가게 옆에는 서부개척시대 미국 분위기를 자아내는 술집들이 있다. 과거 미군들이 즐겨 찾던 텍사스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부산에 있던 미군 부대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이곳을 찾는 미국 사람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러시아 가게들은 미군들이 드나들던 텍사스촌에 있던 가게들은 약간 개조한 수준이다.
바로 한국계 러시아 상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이다. 최근에는 동남아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즐겨 찾는 공간으로 변신 중인 곳이기도 하다. 작지만 글로벌 지구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텍사스촌을 지나 차이나타운 거리로 들어서면 붉은색 간판들이
현란하다.
메케한 냄새가 풍기는 식당 골목이다. 양편으로 자장면부터 각종 만두에다 짬뽕, 오양장육 등 각종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들이 줄을 서 있다.
그 중간에는 이민 3~4세대 화교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다. 그 담벽락에는 삼국지의 유비와 관우, 장비 등이 칼을 들고 있는 모습과 도원결의를 맺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중국을 모국으로 두고 한국에 살면서 국적은 타이완으로 등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후손이 다니는 화교 학교다.
굳이 귀화를 거부하는 이유를 물으니 ‘최소한의 애국심’이라고 답한다. 한국 속의 중국이 생겨난 이유라고 했다.

“너무 고집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몇 대를 걸쳐 미국에 살면서 동화되지 않고 한국 사람임을 고집하는 LA 한인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되묻는다.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들어선 중국식 만두 전문점. 손바닥만 한 크기의 군만두가 먹음직스럽다. 한 입 베어 물면 꽉 찬 만두 속이 느껴진다. 죽엽 청주 한잔을 걸치면 피로가 절로 풀린다. 계란 프라이가 올라간 자장면을 곁들이고 싶지만, 과식은 금물.
공갈빵이 유명한 식당도 한 번쯤 들러볼만한다. 팥빵과 꽈배기 등 추억의 메뉴를 보고 싶으면 차이나타운을 찾으면 된다.
차이나타운이 끝나는 맨 오른쪽 지점에는 붉은색 5층 벽돌 건물이 있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민간 종합병원이었던 백제병원 건물이다.
1927년에 수제 벽돌로 지은 5층 건물이다. 일본에서 배로 운송되는 과정에 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벽돌을 한 장씩 정성스럽게 종이에 싸서 가져왔다는 일화가 있는 건물이다.
그렇게 시작한 백제병원은 독일인 의사를 고용하는 등 글로벌 시스템을 갖추고 초기 순항을 거듭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잘 나가던 백제병원도 후발주자인 일본 병원들의 시기와 견제의 덫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백제병원이 시체를 불법으로 해부했다”는 등 각종 음해성 소문들이 퍼지면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어려움을 겪던 백제병원은 금융권을 앞세운 외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인수되었다고 한다.
이후 백제병원 건물은 몇 차례 철거될 위기를 맞았지만, 벽돌로 지은 건물이 너무 튼튼했던 덕분인지 5층 일부만 훼손된 상태로 살아남았다.
그런 아픔을 겪은 백제병원 건물은 중국음식점, 만화가게, 부동산 중개사무실 등으로 모습을 달리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몇몇 무역 회사들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백제병원 옆에는 남선창고 터가 있다. 1900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물류창고가 있던 곳이다. 부산역에서 서울까지 운송할 물건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주로 명태를 많이 보관했다 하여 일명 명태 고방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냉동고가 없던 시절에 바닥에 수로를 만들어 물기를 제거하고 서늘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창고다.
하지만 남선 창고는 지난 2009년에 철거되고 지금은 대형 마트가 들어섰다. 남선 창고가 남긴 흔적은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이 전부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문화가 뒤섞여 있는 차이나타운과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손으로 문을 연 민간 종합병원과 물류창고가 들어섰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공간. 바로 이곳이 우리 민족의 뿌리에 외국 문물이 들어와 서로 공존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온 현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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